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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내려놓기란 여간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현인들이 손에 쥔 것을 놓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길을 알려줘도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질 못한다. 불행과 행복은 따로 나눠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법륜
법륜스님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 운동가이자, 제3세계를 지원하는 활동가이며, 인류의 문명전환을 실현해 가는 사상가, 깨어 있는 선승이다.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으로 한 수행 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하여 수행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범륜스님의 법문은 쉽고 명쾌하다. 언제나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깨달음과 수행을 이야기한다. 법륜스님의 말과 글은 에두르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근본을 직시한다. 밖을 향해 있는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돌이킨다. 어렵고 난해한 경전 역시 법륜스님을 만나면 스님의 지혜와 직관, 통찰의 힘으로 살아 숨 쉬는 가르침이 된다. 지은 책으로는 직장인을 위한 <행복한 출근길>, 즐거운 가정을 위한 법문집 <날마다 웃는 집>, 부처님의 교화사례 <붓다, 나를 흔들다>, 불교 입문서 <실천적 불교사상>, 부처님의 일생을 다룬 <인간붓다>, 즉문즉설 시리즈 <답답하면 물어라>,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행복하기 행복전하기> 등이 있다. 1988년 교보환경문화상 사회교육분야 본상, 2000년 만해상 포교상, 2002년 라몬 막사이사이상, 2007년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기도
법륜 스님은 삶이 괴롭다는 사람,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사람들은 괴로움이 누구 탓이거나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인이 밖에 있으니 해결책도 밖에서 찾는다. 그러나 스님은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눈을 안으로 돌리라고 한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눈을 안으로 돌리는 노력이 '기도'이다. 기도란 소원 성취를 비는 것을 말한다. 사전의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 도는 그런 의식을 말한다. 신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달라고 간절히 비는, 신의 힘을 빌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바가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루어지면 좋아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바라는 바를 이루면 행복해서 천국에 있는 듯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통스러워서 지옥에 떨어진 듯하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행과 불행을, 지옥과 천당을 돌고 돈다.
붓다의 가르침
부처님은 고락을 모두 고라고 하셨다. 고와 낙이 돌고 도는 데서는 괴로움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낙이라고 해도 그것은 고로 전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생은 결국 고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고락의 사슬, 즉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고 열반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고락의 사슬,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락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고락의 근원이 되는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바라는 바가 이러어져야 행복하다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라는 바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바라는 바는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일도 아니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치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실천과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법의 원리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치도 필요 없고 실천과 노력도 필요 없고, 열심히 빌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기도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며, 이런 기도는 인과법에 맞지 않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실천과 노력도 없이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는 기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에 어긋난다. 그것은 중생살이에 불과하다. 해탈, 열반의 길이 아니며, 모든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