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6. 12.

    by. 수중도시

    맨발의 아베베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는 맨발의 아베베가 마라톤 황제로 떠올랐다. 1932년생으로 1950년대까지 국제적으로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아베베였지만 20년대에 접어들자 술라타 언덕에서 아디아스아바바까지 20km 거리를 매일 달리며 마라토너를 향한 준비를 차곡차곡해 나갔다. 1956년에 처음 참가한 마라톤 대회에서 2위를 했고, 1960년 8월에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경기에서 2시간 21분 23초의 기록으로 자토펙의 기록보다 빠른 기록을 세웠다. 로마 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9월 10일에 열렸다. 로아에 도착한 아베베는 새 운동화를 갔으나 발에 잘 맞지 않아서 물집이 생겼다. 아베베가 맨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시 세계 신기록(2시간 15분 17초) 보유자 포포프를 비롯하여 여러 선수가 무리를 지어 달렸으나 25km를 지나면서 선두로 뛰어나온 아베베와 모로코의 벤 압데셀람이 마지막 500m를 남길 때까지 각축전을 벌이다 아베베가 2시간 15분 16초 2의 세계 신기록으로 골인했다. 우승 직후 아베베는 피로의 기색도 없이 몸을 푸는 듯 움직이다 10km 이상 더 달릴 힘이 남아 있다고 해서 지켜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위해 파병을 했고, 후에는 북한과 더 친해진 에티오피아 황제 셀라시에는 궁전에서 아베베에게 에티오피아의 별을 수여했다.

     

    1976년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와 비슷하게 아베베도 수많은 사람이 늘어선 거리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박수를 받았고, 정부는 운전을 못하는 그에게 차를 선물하면서 기사까지 함께 보냈다. 아베베는 1961년 아테네 클래식 마라톤에서 또 맨발로 달려 우승을 했다. 이는 맨발로 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40일 앞두고 아베베는 급성 충수돌기염이 발생하여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 후 퇴원한 그는 10월 21일에 열린 마라톤 경기에 출전했다. 20km 지점에서 선두로 나선 아베베는 점점 가속을 하면서 2위와 거리를 벌려 2시간 12분 11초 2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두 번의 올림픽 우승을 모두 세계 신시록으로 장식한 것이다. 우승 후 아베베는 로마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지친 기색 없이 마무리 훈련을 했다. 1967년 7월에 부상을 입기 전까지 2위를 한 첫 출전과 5위를 차지한 196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제외하면 출전한 모든 경기를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불운의 월데

    두 번의 우승 후 부상과 사고로 불운을 겪은 아베베와 동갑인 월데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800m, 1,500m, 1,600m 계주에 출전했으나 로마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60년부터 장거리로 주종목을 바꾼 그는 도쿄 올림픽 10,000m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이후로 마라토너로 계속 활동한 그는 수시로 우승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아베베는 부상으로 인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에티오피아에는 월데가 있었다. 10월 13일에 열린 10,0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10월 20일에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0분 26초의 기록으로 우승함으로써 에티오피아 선수로서는 두 번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40세를 채운 1972년에 뮌헨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2시간 15분 8초로 동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올림픽에서 금은동 메달을 모두 획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독일의 쇼터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쇼터는 예일대하교 4학년이던 1969년 NCAA 10,000m 경기에서 우승을 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로부터 8년간 5번이나 미국 10,000m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뮌헨 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1972년 9월 10일에 개최되었다. 고향에서 개최된 경기에서 15km 지점을 지날 때 선두에 오른 쇼터는 골인 지점까지 홀로 역주를 계속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쇼터가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쉬다우스라는 서독 청년이 올림픽 코스를 먼저 돌았고, 자국인이 우승을 했다고 생각한 관중들이 환호를 지르는 바람에 골인 지점을 통과한 쇼토가 혼란스러워한 것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뮌헨 올림픽 10,000m 경기에서 5위에 그쳤으나 그해 12월 3일 자신의 최고 기록인 2시간 10분 30초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남긴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도 마라톤 금메달을 노렸으나 예상치 못한 강자 치르핀스키가 2시간 9분 55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는 바람에 2위에 머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