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6. 3.

    by. 수중도시

    웅장하고 감정적인 그림 - 바로크

    회와의 시대였던 17세기를 미술사에서는 흔히 '바로크(Baroque) 시대라고 구분한다.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고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둔 바로크 양식은 16세기 후반 전 유럽을 휩쓴 종교전쟁의 참화 속에 반종교개혁의 분위기를 타고 로마에서 시작되어 종교개혁 세력을 억누르고 결정적인 승기를 잡은 가톨릭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한편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간 신도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예술가들의 힘을 빌려 천상의 영광을 연상시키는 호화스러운 장관을 교회 안팎에 연출하려고 노력했다. 화려하게 치장된 교회의 제단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은은하게 분향의 향기가 퍼지는 가운데 장중한 오르간 선율과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압도되는 장엄한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개종을 설득하기에 이보다 나은 방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반종교개혁의 선봉인 교회가 예술에 부여한 임무는 자신의 믿음을 순교와 무아경으로 표현했던 신앙의 고백자인 성인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인 조화와 완벽성을 계승하고 여기에 동적인 자세와 섬세한 양감 표현을 더한 바로크 양식은 점차 교회를 벗어나 신성로마제국의 두 축인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들, 그리고 이들에 대항한 80년간의 독립전쟁 끝에 1648년에 독립하여 공화정을 이루고 황금기를 맞이했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시대의 지배적인 유행이 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제단화, 신화나 우화적인 주제의 역사화, 초상화 등을 드라마틱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한 루벤스는 플랑드르 바로크 양식의 대가였다. 고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최상의 교육을 받은 데다 어린 나이에 궁정에 진출해 평생 궁정 생활과 궁정 외교에 밀접한 관련을 맺었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영국의 찰스 1세에게 각각 작위를 받았다. 영주만큼 큰 재산을 모았고 미술계를 전제군주처럼 지배했던 루벤스는 고고학과 예술에 관한 문제에 대해 당대의 유명 학자들과 해박한 라틴어로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영국의 미술사가이며 큐레이터였던 마이클 자페에 의하면 루벤스의 공방에서 제작된 복제품을 제외하고도 루벤스는 1,400 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한 다작가이다. 그의 그림들이 통치자들의 권력을 미화하고 궁정의 사치와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데 적합하여, 루벤스는 주활동지였던 안트베르펜의 예수회 교단, 플랑드르의 가톨릭 통치자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3세,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3세와 펠리페 4세, 영국의 국왕 찰스 1세 등으로부터 수많은 그림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루벤스의 작품들은 화려한 바로크풍의 실내 장식 그 이상으로 미술관의 차디찬 공기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걸작품이다.

     

    1610년경 이후 물밀듯 밀려오는 수많은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루벤스는 과거 라파엘로 아틀리에에서 적용했던 공장식 작업 방법을 안트베르펜에 있는 작업실에 도입하여, 조수를 전공에 따라 섬세하게 고용하고 그들의 능력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새로운 주문이 들어오면 루벤스는 작품 구상이 담긴 작은 채색 스케치를 그리고, 제자나 조수들이 스케치의 구상을 큰 화폭에 옮겨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마치면 루벤스가 얼굴이나 세부적인 부분에 마무리 손질을 하거나 거친 부분들을 부드럽게 완화하여 작품을 완성하곤 했다. 한 그림의 예술적 가치는 이미 초벌 스케치에 유감없이 발휘되고 이를 최종적으로 화폭에 옮기는 일은 부수적인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예술적 구상과 실제 작업을 분리하여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예술관은 17세기 궁극적, 고전주의적 바로크의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루벤스는 말년에는 다시 그가 손수 그린 그림이 많아졌다. 주로 목판에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멀리 작품을 보낼 경우에는 캔버스에 그리기도 했다. 루벤스로 하여금 이전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명성과 성공을 거두게 한 것은 거대하고 다채로운 화면을 손쉽게 구상하고 그 속에 활기가 충만하게 하는 탁월한 솜씨였다. 그의 작품들은 세심하게 입체감을 표현한 채색소묘가 아니라 거침없는 붓질로 입체감을 표현한 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