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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 룬덴의 초상화
안트베르펜에 있는 루벤스 저택을 재단장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벨기에가 1939년 7월 1일에 발행한 부가금 우표 8종 가운데 하나인 <수산나 룬덴의 초상화> 요판 우표를 붙이고 1939년 9월 3일 자 안트베르펜 우체구의 루벤스 저택 방문 기념 날짜도장을 찍은 맥시멈 카드의 그림엽서는 영국 Henry Stone & Son이 제작한 것인데 최근 인쇄된 그림엽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색상이 화려하고 정교하여 구입 초기에는 진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에 목이 긴 매혹적인 그림 속 여인은 루벤스의 오랜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안트베르펜의 상인 다니엘 포먼트의 둘째 딸 수산나로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아놀드 룬덴과 결혼한 직후의 모습이다. 수산나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루벤스는 몇 년 후 52살에 당시 16살이던 수산나의 막냇동생 헬레나와 재혼했다.
두 손을 양을 들어 올리면서 장난스럽게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는 천사와 왼손으로 포도 넝쿨을 잡고 오른손에 포도를 든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천사 사이에서 왼손으로 양을 마시면서 오른손으로 세례요한을 가리키고 있는 아기 예수를 그린 <두 명의 천사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와 세례요한>은 루벤스 특유의 생기발랄한 아기들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포도 넝쿨과 과일 바구니, 양은 당시 안트베르펜에서 정물과 동물 그림으로 유명했던 스니더르스가 그렸다. 맥시멈 카드는 루벤스가 그린 아이들 초상들을 도안으로 벨기에가 1963년 12월 7일에 발행한 결핵 예방을 위한 6종의 부가금 우표들 가운데 가장 고액인 요판 우표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Kunstverlag Wolfrum에서 제작한 그림엽서에 붙이고 화가의 초상이 디자인된 기념우표 우편 날짜 도장을 사망지인 안트베르펜 우체국에서 우표 발행 첫날 찍어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기념 특별전
작년 10월 25일부터 지난 3월 15일까지 약 33만 명이 관람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주인공으로 전시 포스터에 그려진 목선과 소매를 검은 레이스로 장식한 은빛이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스페인 최고의 화가 디에고 벨라 스케스의 최수의 걸작 <시녀들>에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자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주요 임무는 왕과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궁정 초상화가 함의하고 있는 전통적 관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을 가졌지만, 벨라스케스는 마술을 부린 것처럼 진부한 궁정 초상화를 역사상 유례없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술을 부린 초상화 가운데 펠리페 4세의 왕위 계승자 발타자르 카를로스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 특히 유명하다. 어릴 적에 사촌 오빠이자 미래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레오폴드와 결혼하는 것이 정해져 있었던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로 벨라스케스가 그린 공주의 초상화를 정혼자가 있는 비엔나로 자주 보내야만 했고, 특별전 포스터를 장식했던 <흰색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 역시 그러한 초상화 가운데 하나이다.
벨라케스
스페인 남서부에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예술, 문화, 금융의 중심 도시로 16세기와 17세기 대항해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세비야에서 1599년에 태어난 벨라케스는 11살 때 당시 그곳에서 활동하던 스페인 초기 자연주의 화가들 가운데 독보적이었던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공방에 들어가 도제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1617년 봄에 스페인 가톨릭 당국이 규정한 시험에 통과하여 화가로서 정식으로 자신의 공방을 개설하여 도제를 받을 수 있고 다른 화가들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벨라케스는 17세기 당시 생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주로 그렸고 종교화에도 자연주의에 의거하여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해 일상생활 모습을 스스럼없이 가미했다. 1621년에 스페인 왕으로 즉위한 펠리페 4세가 세비야 출신의 올리바레스 공작을 수상으로 지명하자 벨라스케는 마드리드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1623년에 벨라스케가 처음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만족한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임명했다. 그대부터 벨라스케스는 궁정에서 생활하면서 왕의 요청에 응해 그림을 그리는 한편 외교 특사나 궁정 의전관 같은 다른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해 1658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