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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과 광고주들이 즐겨 쓰는 전략은 무엇일까? 우리의 뇌는 참 단순하다. 이것을 이용해 정치 자금을 지원받거나 지지를 받고 물건을 홍보한다.
정치인과 광고주가 즐겨 쓰는 전략
정치인들과 광고주들은 인간이 틀 짜기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점을 언제나 이용한다. '사망세'는 '상속세'보다 훨씬 불길하게 들리며, 범죄율이 3.7%라고 말하는 지역보다 범죄가 없는 비율이 96.7%라고 홍보하는 지역이 더 많은 자금을 지원받는다. 틀 짜기가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선택이 불가피하게 기억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진화를 통해 형성된 우리의 기억 체계는 그때그때의 맥락 특징에 의해 본질적이고도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맥락이 바귀면 우리의 선택도 바뀐다. '사망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여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운명을 환기시키는 반면에, '상속세'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평범한 납세자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세금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범죄율'도 마찬가지로 범죄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만 '범죄가 없는 비율'은 안잔에 대한 생각을 유발한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결정의 순간에 우리가 무엇을 기억 속으로 불러내는지가 때로는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실제로 광고업 전체는 바로 이런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한 법률 회사의 이혼 광고
시카고의 한 법률 회사는 기억과 암시의 힘을 활용한 광고를 게시했다. 그것은 감자칩이나 맥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아니라 이혼을 부추기는 광고였다. 그들이 어떻게 이혼을 광고했을까? 약 15m 넓이의 광고판에 빼어난 미모의 한 여성이 레이스가 달린 검은 브레이 지를 차고 터져 나올 듯한 가슴을 뿜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잘생긴 한 남성이 상의를 탈의하고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법률 회사의 이름과 연락처 바로 위에 다음과 같은 ㅉ랍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이혼하십시오." 맥락적 기억과 자동적인 예비 효과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는 종이 있다면 이런 광고판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 같은 종에게 이것은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이혼은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이다. 이혼을 결정하기 앞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다른 한편으로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후회, 재정 상태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고려 등을 견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정말로 합리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면 이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고판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클루지스러운 뇌를 가진 인간은 이러한 광고를 보고 평소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혼에 대한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다.
진화의 모훈 : 선조의 자산이 현대인의 부채다 된다
지금까지 논의한 틀 자기, 닻 내림, 광고에 대한 민감성 등의 현상들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그 밖에도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그때그때 내부 상태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는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일주일 후 늦은 오후에 어떤 간식을 먹고 싶은지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자 선택의 시점에 배고픔을 느꼈던 사람들의 72%는 감자칩이나 초코바와 같은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는 42%만이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을 선택했고, 나머지 다수는 사과나 바나나를 선택했다. 사과나 바나나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건강 유지라는 우리의 장기 목표와 일치한다. 그러나 배고픔을 느낄 때면 소금과 정제 설탕이 쾌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장기 목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진화와 관련이 있다. 합리성이란 말 그대로 관련 증거들을 철저하고 사려 깊게 비교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포유동물의 기억회로는 전혀 이런 목적에 맞게 조율되어 있지 않다. 기억의 신속함과 맥락 민감성은 위협적인 환경에서 급히 결정을 내려야 했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과거의 자산이었던 것이 현대에는 부채가 되었다.